<귀래정,歸來亭>
넓고넓은 천지가 비로 내집인데
칠십에 당당하나 늙음을 어이하랴
그래도 기쁘구나 이 세상에서 술 깰날 적은 것이
말하지 말라,이런저런 번민할 때 많은 것을
안개싸인 물에 먼 숲은 은은하고
옛절은 아늑한데 물가에 달비친다,
늙고 병들음에 한가함이 바로 약인 것을
낚시대 하나에 낚거루가 내 삶에 족하구나
위에 소개한 시는 조선시대 이굉이 지은 시 입니다,
어제 오산에 위치한 원동낚시터를 찾아 <붕돌이와 붕순이>납회에 참석을 했습니다,
오는길에 우렁쉥이님께서 수고가 많았습니다,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시간낭비와 연료소모가 있었지만 연료를 충분하게 채워 드리지 못하고 중식으로 가을의 식미를 돋구는 추어탕으로 대신 했습니다,
납회장소에 도착을 하고보니 에상했던 대로 이 몸이 고물1호였습니다,
고물1호의 딱지가 붙게되자 조선시대 이굉이 생각나게 된 것입니다,
아직은 위에 소개된 이굉이 지은시의 나이에 조금 못미처서 칠순에 해당되지 않지만 스스로 고물1호가 되고보니 그 생각부터 하게 되는군요,
제 주위에 여러분이 계시기에 저의 하루는 또 즐거움을 갖게 되었고,
따라서 화기애애한 분위기 창출을 위해 최선을 다 하신 운영진 모두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원래 낙시나 등산은 모임에 따른 부자재가 업청 많습니다,
이러한 거추장스런 보따리부대가 되고보니 회원 모두가 서로 노력하지 않으면 운영진들만 고생하게 됩니다,
심지어 먹거리까지 동원되다 보니 그에따른 장비며,참석하신 회원 모두에게 골고루 나눠줘서 흐믓한 감정을 느낄수 있도록 하다보니 선물꾸러미가 작난이 아닙니다,
그러나 옥에 티랄까
모처럼 답답하고 짜증난 직장을 잠시떠나 서로 반가움에 술한잔이 들어가다 보니까 그 반주의 효력이 100% 발효가 된걸루 짐작케 하는데....
그에 따른 고통은 청산녹수를 비롯하여 제 옆에서 낚시를 하신 우렁쉥이님과 몇몇 조사분들 이였습니다,
이 효력은 나이키허큐레스 발사대주변보다 엄청커서 마치 <소리지르기 시합 세계대회> 같았고,
그 위력은 서로 일등을 차지하기 위한 최후의 비상한 발악으로 들렸습니다,
간식으로 들어가는 반주식 그 웃음소리는 천지를 진동하듯 하여 마치 삼국지에 나오는 장비쯤의 호방한 웃음소리 마저도 이에 크게 미치지 못할것으로 짐작 됩니다,
충분히 조용한 대화로도 가능한데 밤공기가 무색하리 만치 낚시터 분위기를 맞추기엔 턱없이 부족 했습니다,
좀 지나친 표현을 빌리자면 발악에 가깝다고나 할까......
아마 주변에서 놀거나 잠들었던 산새들 조차도 모두가 뜻밖의 사태에 깜짝놀라서 피난들을 가기에 바빴었줄 믿습니다,
여기에 조사한 바도 없었고 관심밖이였기 때문에 일일히 소개를 하지 않습니다만,소리지르기 시합에 참석하신 회원분들께서는 으례 짐작을 하실줄 믿습니다,
좌우지간에 막걸리 파티로 끝난게 아니고 맥주와 짬봉을 하드니만 그 효과가 배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가 원래 인덕이 없어서인지 운이 따라주지 않은 탓인지 몰라도 수도권 낚시동회 모임에서 두번째 겪는 일이기도 합니다,
지난번 카폐<돌찌나라>에서는 그런일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위치적으로도 큰소리를 듣지 못할뿐만 아니라 산발적으로 위치하다 보니까 결론이 발사대 따로 나이키하큐레스 따로이다 보니까 발사중지된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사진설명 = 하당지에서의 청산녹수자리 : 운치가 끝내주는 자리였습니다,
그래도 나이키하큐레스 발사장면속에서도 밤 늦게까지 찾아와서 일일히 손잡아 주신 회원분들이 계셨기에 즐거웠습니다,
방장님께서는 참석하신 회원분들도 마찬가집니다만
잠시 얼굴만 보여주시고 아쉬운 발길을 돌리셔야만 했던 회원분들 사진 빠짐없이 소개 바랍니다,
되돌아 가신 회원님들의 성의에 다시한번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스스로 느낀 일이지만
이러한 크고작은 카폐모임엔 회원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가 회원들의 마음을 푸짐하게 갖게 만드는 원동력이요 활력소가됩니다,
이러한 모임 자체가 많은 얼굴익힘의 효과도 가져올뿐만 아니라 인생의 삶의 질이 더욱더 좋아질수 있는 계기마련도 됩니다,
따라서 자그마한 관심만 가져줘도 더욱더 휼륭한 모임체가 이루어 질 것으로 기대 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여 두자면,
손맛터 원동낚시터에 대해서 여러분 모두와 깊은 사고적 논의를 해 봐얄것 같습니다,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이곳 낚시터의 물고기 상당수가 상이용사들입니다,
입술이 걸레처럼 너덜거리거나 아예 입술 자체가 없거나 고통에 따른 나머지 먹지를 못해 비쩍 말라서 마치 말리다 만 북어 같았습니다,
어느놈은 모래무치가 너무 커서 그러나 보다하고 눈을 의심케 했는데....
두번다시 원동낚시터는 안 갈랍니다,
낚여 나오는 놈 마다 몰골이 너무 불쌍해서 맘이 아파요,
수많은 조사들이 사정없이 낚아채서 도로 놔 주면 한번으로 끝난게 아니라 또 다른 조사가 연거푸 사정없이 낚아채어 수면으로 끌어 올리고....또 놔 주고.....
차마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 가슴이 아파서 낚싯터관리인에게 물고기 관련하여 조언을 해 두었습니다,
<물고기를 모두 교체하는게 어떠하냐?>고
물론 엄청난 양의 물고기 교체는 상당한 자본투자가 필요 할 테지만 장사가 안되는 것 보다야 나을테지....
낚시중 후킹이 되었어도 중간에 빠지기도 하고....아예 후킹이 안되는 경우도 더러있고 스스로 원인분석을 해본 결과 대부분의 물고기가 입술이 없었다는데 그 이유가 있었습니다,
먼저 도착하여 채비투척중에 채비의 결함으로만 잘못 판단하고 수없는 채비교체에만 매달렸었습니다,
나중에사 비로소 깨닳았는데 그게 아니라 물고기의 입술이 없었다는게 그 이유였습니다,
어느놈은 입술이 아닌 아가리에 걸려 나오기도 햇습니다,
제가 원동낚시터 카폐모임 관련하여 별도로 이미지를 담아오진 않았지만 필히 소개가 될것으로 믿고 간단하나마 이 늙은이의 잔소리를 접겠습니다,
아래에 소개된 이굉관련 글은 퍼왓습니다,
따라서 출처와 게시자 이름을 소개 합니다만 퍼가는 것을 원치 않은듯 막아 놨는데 도둑질해서 퍼 왔으므로 다른곳으로는 제발 퍼 가지 말아 주실것을 당부 드립니다,
귀래정,歸來停
귀래정(歸來亭)과 이굉 고성이씨가 안동에 입향한 것은 세종 때 좌의정을 지낸 이원(李原)의 아들 이증(李增, 1419~1480)에 의해서다. 이증은 현감을 지내고 안동에 입향하여 지역선비 12명과 함께 우향계(友鄕 )를 맺어 산수에 소요하며 덕업을 권하고 허물을 경계하는 등 지역 교화에 이바지했다. 귀래정을 지은 이굉은 바로 이증의 둘째 아들이다.
이굉(李 , 1440~1516)의 자는 심원(深源), 호는 낙포(洛浦)로 좌의정 원(原)의 손자이며, 현감 증(增)의 아들이다. 1464년(세조 10) 진사시에 합격하고, 1480년(성종 11)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전적(典籍)이 된 뒤 군위현감·세자시강원문학·사간원헌납·사헌부지평·공조정랑·청도군수·사재감첨정·봉상시부정 등을 지냈다.
1500년(연산군 6)에는 사헌부집의를 거쳐 예빈시정·승문원판교·상주목사를 역임한 뒤, 1504년 갑자사화에 김굉필(金宏弼) 일당으로 몰려 관직이 삭탈되었다. 1506년 중종 반정 뒤 다시 기용되어 충청도병마절도사·경상좌도수군절도사·개성부유수 등을 지냈고, 1513년(중종 8)에 나이가 많아 사직한 뒤 고향인 안동에 내려가 귀래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그 곳에서 풍류생활을 하였는데 시문에 능하였다.
이굉 이 건립한 정자 귀래정
조선시대 정자인 귀래정(歸來亭)은 경북 안동시 정상동(亭上洞) 777번지에 위치해있는데, 1985년 경상북도문화재 자료 제17호로 지정되었다. 안동시내에서 영호대교를 건너 좌회전하여 영호루 앞으로 난 도로를 따라 약 1.5km정도 가다보면 귀래정에 다다른다. 귀래정은 ‘안동 8경’ 중의 한 곳이다. 歸來亭上白雲遊(귀래정 위에는 흰구름이 노닌다). “영가지”에는 부의 동남쪽 5리 와부탄(瓦釜灘) 위에 있다고 적고 있다.
1998년 4 월 귀래정 주변이 택지로 개발되면서 ‘미라’와 ‘원이 엄마의 편지’가 발굴되어 화제가 된 바 있다.
귀래정은 개성부(開城府) 유수(留守)를 지낸 이굉(李 )이 1513년(중종 8)에 지은 정자로서 정면 4칸, 배면 2칸의 정자형(丁字刑) 팔작지붕이다. 정면 4칸은 넓은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뒷면은 온돌방으로 꾸몄다. 온돌방도 정면 2칸, 측면 2칸의 4칸은 넓은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뒷면은 온돌방으로 꾸몄다. 온돌방도 정면 2칸, 측면 2칸의 4칸을 이루고 있다. 마루 주위에만 두리기둥을 세웠고 그 외는 모두 사각기둥이다. 창문에 중간설주(中間楔柱)가 남아 있는 것이 건축상의 특징이다. 풍수지리적으로 해석되는 부분은 건축구조인데 귀래정의 공간배치가 아주 특이한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내려다보면 정(丁)자의 첫 획에 해당되는 일(一)자형의 전면은 남쪽을 향해 있으되, 둘째 획에 해당되는 그 뒷면의 세로로 돌출한 온돌방은 안동의 성진골을 향해 있다. ‘정’자 모양을 뒤집어 보면 남근처럼 凸생긴 건축물이 성진골을 향해 돌출되게 보인다. 다시 말해서 성진골이 남쪽의 귀래정을 향해 모양을 이루고 있다면, 귀래정의 형상은 성진골이 있는 북쪽을 향해 凹모양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자연히 귀래정의 형상은 성진골의 여근형상 곧 공알산을 향해 남근을 세우고 있는 모습으로 해석된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귀래정의 구조가 상당히 독특하기 때문이다.
낙동강이 합수되는 경승지에 정자를 짓고
당호를 귀래정이라 한 것은 이 곳이 도연명의 귀거래사의 뜻과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이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안동의 여러 정자 가운데 입청각, 군자정, 하회의 옥연정과 귀래정을 으뜸으로 꼽았다.
규모가 작고 꾸밈새가 검박하나 전면에 큰 누마루를 두어 그런대로 별당으로서의 여유와 운치가 있다.
이 곳에는 농암 이현보, 송재 이우, 택당 이식, 백사 윤훤 등의 시판 30장이 게판되어 있다.
귀래정 앞에는 이굉의 신도비가 서 있고 현재의 귀래정은 도로확장공사로 인해
원래의 위치에서 20m정도 뒤쪽으로 옮겨진 건물이다.
옮기기 전 담안에는 수령이 약 400년은 족히 된 은행나무가 있었는데 1982년엔 보호수로 지정되어 왔으나
지금은 귀래정의 담 밖에 서 있게 되었다.
귀래정 / 권응인(權應仁)
몸에도 일을 갖지 않고 공적 일도 마치고서
곧고향을 잃지 않고 찾아가니 흥취가 어떠할까
낚시엔 터가 있어 남긴 자취 예스럽고
호수와 산엔 주인 없어 여러 해를 지났더라
거친이끼는비를 끼고 문앞 길을 봉하고
늙은 나무는 구름에 이어져 언덕 모래로 맞는구나
누가 다시 허락할까 수풀아래 계획 이름을
좋은 곳 한가로이 문 동쪽 가에 터 잡으리
귀래정 / 이 우 (송재)
일찍 벼슬 버리고 돌아와서
두강 굽이친 곳에 집 세웠다네
시내와 산은 주인 있음을 알고
갈매기와 해오라비 무리를 이루었다.
차조가 있으면 먼저 술을 빚고
한가로운 마음 구름 같아라
노나라 은공처럼 은거하여
늙음을 마칠이 땅
임금님의 부름을 기다리는 것은 아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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